내 눈으로 보고 내 머리로 생각하고 내 손발로 해보려는 것, 어쩌면 세상은 지금 그걸 불편이라고 부르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불편'이란 '삶' 자체다. 그렇다면 '편리'란 '죽음'일지도 모른다.
꿈을 꾸고 그 꿈에 마음을 빼앗기고 잘 되지 않으면 어쩌지 마음을 졸일틈이 있다면, 지금 당장 이 당근과 튀긴두부를 온전히 맛보라. 그곳에 있는 우주를 마음껏 즐겨라. 어쩌면 깨달음이란 바로 이런게 아닐까.
냉장고를 없앰으로써 나는 욕망이 사라졌다. 끊임없이 폭주하던 욕망이 급정지한 것이다. 그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은, 살아가기 위해 정말로 필요한게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것을 실감했기 때문이다. 먹고 산다는 것의 정체를 파악했기 때문이다. 그걸 깨닫고 나는 마음이 편해졌다. 이렇게 적은 물건만으로도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 불안이 사라졌다. 불안이 사라지니 스트레스도 사라졌다. 스트레스가 사라지자 욕망이 사라졌다.
욕망은 불안을 잠식시키기 위한 달콤한 과자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게는 더 이상 달콤한 과자가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가능성을 닫고 산다. 나는 그 가능성에 내 인생을 걸어보기고 마음먹었다.
위를 바라보며 살아가는 삶은 박수를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위를 바라볼 수 없게 되었을 때, 사람은 무엇을 목표로 살아가야 하는가... 위를 바라보며 살아간다는 것은 훌륭한 일이다. 하지만 그것만이 훌륭한 일은 아니다. 위를 바라보며 살아왔으니 이쯤에서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보는 것도 제법 즐겁다.
절전이든 인생이든 끝이 없는 벽과의 싸움이다. 벽은 너무나 높으니 그 높이에만 집중하다보면 모든 걸 포기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으면 사소한 것이라도 몇 번이든 도전하겠다고 결심하면 아주 미약하게나마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래, 그렇게 살아가면 되는거야, 아마도...
인공지능이 발전을 거듭하면 인간이 인공지능에 의해 멸망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얘기가 솔솔 들어온다. 단언컨대, 정말로 맞장을 뜨는 날이 오면 인간은 컴퓨터엔 절대로 못 당한다. 나는 전기온수기 같은 단순한 기계조차 이길 수가 없었다. 그들을 사람 형편에 맞춰 자유자재로 이용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면 그건 순진한 착각이다. 그게 일 년여 동안 전기온수기와 싸우며 내가 내린 결론이다.
난 더 이상 집안일을 차별하지 않는다. 절대로. 쭈그려 앉아 빨래를 하는 시간은 결코 쓸모없는 시간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그건 바로 나를 위해서다. 세상 한구석에서 끈 떨어진 연처럼 살아가고 있지만, 나 역시 결코 쓸모없는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매일매일 확인하기 위해서다.
살아간다는 것, 살아가는 한 모든 시간은 오롯이 살아내는 것이 아닐까, 매순간, 누구도 하찮게 여기지 않고, 차별하지 않고 똑바로 마주한 채 살아가는 그것이 아닐까..
<퇴사하겠습니다>에 이어 내놓은 신작..
전편보다 더 많은 것을 내려놓은 거 같다.
너무 부럽다. 이렇게 놓아버릴 수 있어서...
쓸쓸한 삶..
삶은 바로 그런 것이다.
그 쓸쓸한 삶을 나름 야무지게 살아내고 있다.
일본인들의 이런 저력....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스님만의 전유물인 무소유한 삶이 이제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생활방식이 되어가고 있는 거 같다.
자원은 점점 고갈되고 물건들은 마구 넘쳐나고 지구는 쓰레기로 변해가는데 이런 무소유한 삶말고 더 좋은 삶의 방식이 있을까..
무소유을 실천하는 중생들의 삶.. 멋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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